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웨스트민스터 사원 (문단 편집) === 무명 용사의 무덤 === ||<:>BENEATH THIS STONE RESTS THE BODY OF A BRITISH WARRIOR UNKNOWN BY NAME OR RANK BROUGHT FROM FRANCE TO LIE AMONG THE MOST ILLUSTRIOUS OF THE LAND AND BURIED HERE ON ARMISTICE DAY 11 NOV: 1920, IN THE PRESENCE OF HIS MAJESTY KING GEORGE V HIS MINISTERS OF STATE THE CHIEFS OF HIS FORCES AND A VAST CONCOURSE OF THE NATION THUS ARE COMMEMORATED THE MANY MULTITUDES WHO DURING THE GREAT WAR OF 1914 – 1918 GAVE THE MOST THAT MAN CAN GIVE LIFE ITSELF FOR GOD FOR KING AND COUNTRY FOR LOVED ONES HOME AND EMPIRE FOR THE SACRED CAUSE OF JUSTICE AND THE FREEDOM OF THE WORLD THEY BURIED HIM AMONG THE KINGS BECAUSE HE HAD DONE GOOD TOWARD GOD AND TOWARD HIS HOUSE ------- 이 비석 아래에 이름도, 계급도 알 수 없는 한 [[영국]] 용사의 몸이 누워 있다. [[프랑스]]에서 수습하여 국왕 [[조지 5세]], 국무대신, 군대 상관, 수많은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1920년 11월 11일 휴전일에 국토에서 가장 빛나는 곳에 묻혔다.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년의 대전쟁]]에서 하느님을 위해 국왕과 국가를 위해 사랑하는 자들의 고향과 [[대영제국]]을 위해 신성하고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 세계의 자유를 위해 사람이 바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생명을 바친 수많은 자들을 기린다. 그는 하느님과 가문에 선을 이루었으므로 이곳에 왕들과 함께 묻노라.|| ||상단 문구||"주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신다."([[디모테오후서|2디모]] 2:19)|| ||좌측 문구||"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의 복음서|요한]] 15:13)|| ||우측 문구||"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고린도후서|2고린]] 6:9)|| ||하단 문구||"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1고린]] 15:22)|| 내부 바닥에는 [[1920년]] [[11월 11일]]에 안장된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영국 육군]] 전사자 중 한 명으로, 1차 대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대표하여 매장되기 위해 신분을 확인할 수 없었던 전후 발굴 유해들 가운데 선발되었다. [[벨기에]]에서 발굴된 뒤 관에 안치한 유해들을 늘어놓고, 육군 장교 한 사람이 눈을 가린 채 몇 바퀴 돈 후 관들 사이로 지나가다 그중 하나에 손을 대는 방식으로 뽑았다. 이 무명 용사는 훗날 [[미국]]으로부터 참전한 모든 [[영국군]]을 대표하여 [[메달 오브 아너]]를 받았으며 무덤 근처 기둥에 훈장이 있다. 이 무덤은 전쟁에서 전사한 영국 군인 모두를 기리는 상징이며, [[유럽]] 문화 특성상 성당 바닥에 안치된 다른 무덤은 밟아도 별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야훼|하느님]]의 성전인 성당을 천국과 동일시하여, 천국 바로 곁에서 묻히고 싶은 염원으로 인해 성당 바닥에 안치되고 싶어하는 문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 무명 용사의 무덤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성당 바닥에 만들어진 무덤들은 밟고 다녀도 상관없는데, 이건 안치된 고인이 아예 성당의 일부가 되었다는 식의 취급이다. 참고로, 당연하지만, 아무나 성당 내부에 안치될 수 없다!!] 이 무덤만은 밟는 게 금지라, 장례식을 할 때에도 관을 운구하는 사람들이 여기만은 피해서 걸어가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왕실 역시 예외가 아니다. [[파일:external/monthly.chosun.com/1106_370_1.jpg|width=500]] ||왕가의 결혼식에도 저 자리는 절대 밟지 않는다. 2011년,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미들턴]]의 결혼식.|| 1923년 4월 26일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결혼식에서 엘리자베스가 입장하던 중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오빠]] 퍼거스를 추도하며 무명 용사의 무덤 위에 부케를 올렸는데, 이후 로열 웨딩이 있을 때마다 신부의 부케를 무명 용사의 무덤 위에 올려놓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파일:royal-wedding-bouquet.jpg|widtg=560]] 2011년, [[캐서린 미들턴]]의 부케 [[파일:attachment/웨스트민스터 사원/f0018015_4edf838c68938.jpg]]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국]] 국빈 방문 때 참배한 적이 있다. 무덤 주변의 조화는 [[개양귀비]]로, 영국에선 [[제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추도하는 꽃으로 지정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